애욕의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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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돌아오던 준하는 자취방 입구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때 이른 열대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여름밤인데도 불구하고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방문 앞엔 함께 자취하는 영욱의 신발이 흐트러진 채 놓여 있었다.

이상한 예감이 준하의 머리를 스쳐갔다. 이 자식이 설마 또?

준하는 발돋움을 하여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았다. 커튼이 쳐져 있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하나가 아닌 두 명의 인기척이었다.

준하는 소리를 죽여 창문을 살며시 열어보았다. 다행히도 창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열린 창문 틈으로 두런거리는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귀에 익지 않은 여자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아이, 참! 이러지 말라니까. 좀 있으면 친구 돌아올 시간이라면서?"

"그 자식 돌아오려면 아직 2∼30분은 더 있어야 돼. 시간은 충분하다니까."

"파워포인트 가르쳐준다면서 데리고 와서는 왜 자꾸 엉뚱한 짓을 하려고 해?"

"그 파워는 충분히 배웠으니까 이제 다른 파워 좀 배우자는 거지. 흐흐!"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뭔가가 바닥을 짓찧는 소리가 이어 들렸다. 더 이상 들어보지 않아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눈썹을 찌푸리며 준하는 폭!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이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친구라지만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욱이 틈만 나면 여자를 자취방으로 불러들여 그 짓을 해댄 건 이미 오래 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준하가 화나는 건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차피 여자 따먹는 걸 인생의 화두로 삼고 있는 녀석인 만큼 그가 얼마나 많은 여자와 그 짓을 하든 그런 건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그가 여자들과 그 짓을 벌이는 공간이 하필이면 자신의 자취방이라는 데 있었다. 물론 이따금은 비디오방이나 여관방 같은 델 이용하기도 하지만 그건 극히 드문 경우였다.

처음 몇 번은 애교로 봐주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의 작태는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수도 없이 그의 방탕한 삶을 힐난하고 심지어 싸움도 해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때마다 그는 남자의 능력 운운하며 되레 자신을 빙충이로 몰아세웠다.

―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을 해, 짜샤! 너도 계집애 데리고 와서 하면 될 거 아냐? 내가 하나 붙여주리?

이런 식이니 대화가 될 리 만무했다. 그는 참을 만큼 참았다. 이제는 모종의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때없이 여자의 애액과 그의 정액 냄새가 진동하는 방 안에 누워 잠을 청하는 일도 이젠 지긋지긋했다.

몇 번이나 자취방을 옮길까도 생각했지만 그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돈이었다. 사실 그가 영욱과 함께 자취를 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허리가 휘도록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생활비를 대기도 빠듯한 형편이었다. 현재로써 독방을 구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때문에 영욱의 방종을 묵인하며 함께 지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도 엄연히 방 값의 절반을 부담하고 있으므로.

"으으응! 살살 좀 해. 아프단 말야……"

문득 여자의 교태스러운 음성이 준하의 귓전을 흔들었다. 보통 때라면 이쯤에서 하릴없이 물러났을 테지만 오늘은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몸도 너무 피곤했을 뿐더러 달리 갈 만한 곳도 없었다.

하지만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는 가장 이유는 바로 하이 톤으로 이어지는 색정적인 여자의 신음 소리 때문이었다. 물론 육욕에 헐떡이는 여자의 신음 소리를 듣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발정기에 오른 암코양이의 괴성 같은 신음 소리까지 들어본 그였다. 바로 자신의 자취방 안에서.

때문에 지금 방 안에 있는 여자의 신음 소리가 특별히 인상적인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들어온 수많은 여자의 신음 소리들과 비교해 보면 오히려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그 평범한 신음 소리가 기이하게도 그의 감각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었다.

준하 그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맨 처음 영욱이 여자와 벌거벗은 채 뒤엉켜 있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그는 몹시 놀라기도 했거니와 맹렬하게 치밀어오는 성욕도 함께 경험해야 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욕정으로 인해 그는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미친 듯이 수음을 하고 말았다.

그 이후로도 몇 차례 그런 경험을 하긴 했지만 그런 일이 오래 가진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평상심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영욱의 간단없는 여성 편력에 짜증이 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잊고 지내던 옛 기억을 떠올리듯 그는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욕망을 느끼고 있었다. 방 안을 훔쳐보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치밀었다. 영욱에 대한 분노도 잊은 채 그는 숨죽여 방 안을 엿보기 시작했다.

5센티미터쯤 벌어진 커튼 사이로 버둥거리고 있는 네 개의 다리가 언뜻 보였다. 호기심이 극에 달한 준하는 대담하게 창문을 열어젖힌 뒤 슬며시 커튼을 걷었다. 이제 막 영욱이 여자를 짓이기고 있는 찰나였다.

가장 먼저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여자의 발목에 걸려 있는 곰살맞은 팬티였다. 영욱과 여자는 아랫도리만 벗은 채 허겁지겁 서로를 탐닉하고 있는 중이었다. 투실투실한 영욱의 엉덩이가 벌어진 여자의 가랑이 사이로 파고들며 근육을 씰룩거리고 있었다.

"으으응…… 왜 이렇게 급해? 좀더 천천히…… 천천히…… 아하아!“

두 팔로 영욱의 목을 조이며 여자가 축축이 젖은 신음 소리를 냈다. 여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쉴새없이 엉덩이를 수축시키며 여자의 그곳을 짓찧고 있는 영욱의 뒷모습과 허공에 뜬 채 흔들리고 있는 여자의 희멀건 다리뿐이었다. 여자의 엄지발가락엔 진홍색의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준하는 아랫도리가 묵직해졌다. 점차 호흡이 가빠지면서 입 안이 마르고 있었다. 그 역시 매끈한 여자의 종아리만 보아도 불끈 성욕이 치미는 한창 때의 나이였다. 때문에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질펀한 정사는 그에게 견디기 힘든 자극이 아닐 수 없었다.

준하는 팽팽하게 발기한 자신의 페니스를 지그시 손으로 눌렀다. 그다지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수음으로 욕구를 해결한 지도 벌써 열흘이 넘게 지나 있었다.

그는 문득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가 영욱을 밀어낸 뒤 여자의 가랑이 사이로 자신의 그것을 쑤셔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행위는 이제 절정을 향해 치달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토해내는 거친 신음과 아랫도리가 부딪치는 지점에서 새어나오는 질척거리는 소리는 준하의 의식을 해체시키고 있었다. 페니스를 잡고 있는 준하의 손아귀에 점차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오빠, 거기서 뭐 해?"

모공이 바싹 수축하면서 온몸이 오그라들 듯이 경악하면서 준하는 히뜩 고개를 돌렸다. 주인집 둘째 딸인 선숙이었다. 그녀는 어둠이 촘촘히 내린 복도를 가로질러 이제 막 준하의 앞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어, 어쩐 일이냐, 여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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