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은 연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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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형편이 많이 어려웠다. 아빠는 허리가 아파 일을 제대로 나가지 못해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 때문에 언니는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가지 못했다.

하지만 난 그런 언니가 불쌍하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다. 왜냐하면,

언니

"뭐야. 왜 집에 있어? 아르바이트 안가?"

우리나라 취준생이라면 모두 다 원하는 그 어마어마한 S 기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대학도 가지 못한 언니가 어떻게 그런 대기업에 들어갔냐 묻는다면 그건 언니의 좋은 성적 때문이라 말할 수 있겠다.

전교권에서 노는 성적에도 대학에 가지 못하는 언니를 가엾게 여긴 학교에서 언니를 S 기업에 추천했기 때문이다.

언니는 비상한 머리로 한 번에 입사시험을 통과했고 아빠 엄마에게 기쁨을 안겨주었다. 휘청휘청하던 집도 어느 정도 일으켜 세웠고.

성은

"나오지 말래."

언니

"또? 왜?"

성은

"정직원 테스트 떨어져서."

언니

"자랑이다."

함께 침대에 엎드려 있던 노트북 화면을 언니가 탁-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가자미눈을 뜨고 금방이라도 언니를 노려보며 왜 그러냐 쏘아대고 싶었지만, 상상만 할 뿐. 막상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다.

언니

"대학까지 나와서.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래? 엄마 보기 미안하지도 않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언니가 하는 말은 전부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대학까지 나와서. 이러고 있는 건 정말 내가 봐도 한심한 일이었으니까.

집에서 유일하게 수능까지 봐서 들어간 대학이었다. 아빠 엄마의 기대는 물론 내심 내게 질투 아닌 질투를 했던 언니도 졸업 후에 내 사회생활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나 자신조차. 학교만 졸업하면 금방 취업이 되어 언니의 저 높은 콧대를 금방이라도 꺾어 줄 거라 자신했다.

언니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네 뒤 봐주면서 살아야 해? 너도 이제 스물일곱이야. 니 앞가림할 나이는 됐잖아."

성은

"내가 이러고 있고 싶어서 있는 게 아니잖아."

언니

"이런 상황에서도 말이 나오냐 너는?"

성은

"……."

언니

"정신 좀 차려. 인제 그만 좀 빌붙어 살라고."

이렇게나 가슴을 쿡쿡 찌르는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말 한마디 내뱉을 수 없다.

서럽다고 울 수도 없다. 그 눈물조차 흘릴 자격이 내겐 없으니까.

성은

"미안해."

겨우 내뱉은 찌질한 말 한마디에 그제야 언니가 몸을 돌렸다.

손끝이 하얘지도록 손가락을 꾹 눌러 겨우 숨을 삼켰다.

언니

"똑바로 해."

쾅-

졸업 후 내게 다가온 현실은 너무나 냉혹하고 잔인했다.

구직 사이트에 올라오는 공고는 똑같았다.

다들 성실하고 훌륭한 인재를 뽑는다느니, 학력과 경력은 중요하지 않다느니, 열정과 성실함만 본다느니.

온통 개소리뿐이다. 세상에 열정과 성실함이 넘치는 취준생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소리를 써놓을 거면 경력직을 뽑는다고 밑에는 왜 써놓은 건데.

성은

"하…."

결국, 마우스를 집어 던지고 침대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계속 그렇게 사이트를 들여다보고 있어 봤자 해결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여태 지원한 회사가 몇 곳이고, 쓴 이력서가 몇 장인데. 오는 전화는 한 통도 없었다.

"정신 좀 차려. 인제 그만 좀 빌붙어 살라고."

이번 말은 확실히 데미지가 셌다. 뭘 해도 잊혀지지가 않네.

아이씨- 잔뜩 엉켜진 머리를 한 번 더 헝클어뜨리고 결국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회사는 이번 연도에 물 건너간 거 같고, 아르바이트라도 다시 해봐야지.

한숨을 쉬며 배경화면 한가운데 외롭게 떠 있는 알바몬 앱을 터치했다.

성은

"오픈 멤버…."

맨 첫 번째 칸에 있는 공고에 나도 모르게 홀리듯 들어가버렸다. 시청 옆에 새로 생기는 카페의 공고였다.

시청 옆이면…. 바로 집 옆인데. 거리도 가깝고, 카페 일도 평소에 해보고 싶기도 했고. 잠시 망설이다 카페 이름 옆에 쓰여 있는 번호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성준

"네."

몇 번의 통화음이 지나가고 꽤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의외다. 분명 여자일 줄 알았는데.

성준

"여보세요."

채근하듯 남자가 한 번 더 말했다. 그 목소리에 넋 나가 있던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성은

"안녕하세요! 구인사이트 보고 전화드렸는데요. 사람 구하신다고…."

성준

"어느 부분 지원하세요."

성은

"아 저…."

이거다. 홀린 듯 들어간 이유. 정직원.

경험도 없는데. 직원을 시켜줄까. 겁이 나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계속 말꼬리만 잡아끌고 있었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남자가 무뚝뚝한 말투로 물었다.

성준

"직원 지원하시나요."

성은

"아…. 제가 그…. 이쪽 일 경험은 없는데. 그래도 직원…. 할 수 있나요?"

안된다고 하면 최대한 쿨하게, 아무렇지 않게 아르바이트를 지원한다고 말할 참이었다. 뭐, 조금의 쪽팔림은 있겠지만. 내가 지금 찬 밥 더운밥 가릴 처지인가.

꾹 입술을 깨물고 남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성준

"문화회관 옆에 있는 카페. 아시나요."

성은

"예? 아, 네. 알아요."

성준

"여섯 시에 뵙죠."

뚝- 뚜, 뚜.

확 끊기는 소리에 놀라 핸드폰을 들어 액정을 바라봤다. 채 2분도 되지 않는 통화였는데. 왜 이렇게 길게 느껴졌지. 그나저나 보자는 건 직원 할 수 있단 소리인가?

휙- 핸드폰을 침대에 던지고 시계를 바라봤다.

5시?!

그러다 점차 여섯 시에 가까워지는 시계에 나도 모르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뛰어갔다.

***

부랴부랴 도착한 시간은 다섯 시 오십칠 분이었다. 빙- 카페를 둘러보니 무슨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지. 남자가 누군지 당최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수없이 핸드폰을 들어 아까 걸었던 번호로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는데,

성준

"앞이요."

걸자마자 받았다. 더 신기한 건 전화 속 목소리가 마치 앞에서 들리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는 거다.

이상한 느낌에 남자의 말대로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보았다.

회색 니트에, 단정한 검은 머리. 뭘 그렇게 열심히 보는지 얼굴을 들지도 않고 테이블에 흐트러져있는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큼큼- 핸드폰 종료버튼을 누르고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최대한 좋은 목소리로 남자의 앞에 다가섰다.

성은

"안녕하세요. 아까 전화드렸던…."

성준

"앉으세요."

성은

"아, 예…."

단호해. 차가워. 남자를 본 첫 느낌이었다. 거기다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는 무례함까지.

성준

"이력서 주세요."

성은

"아, 여기."

성준

"가져오란 말 않았는데."

성은

"어…."

성준

"준비성 좋으시네요."

저건 칭찬일까? 원체 웃지 않는 얼굴인건지, 무표정으로 말하는 남자의 말이 마냥 기분 좋지가 않았다.

거기다 방금 처음으로 대면한 얼굴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저렇게 잘생겼는데 왜 연예인을 않을까, 할 정도로. 남자의 얼굴은 웬만한 배우보다도 훨씬 나은 외모였다.

성준

"아르바이트 경력 많으시네요."

성은

"네."

성준

"직원 지원하시는 거죠."

성은

"네…."

성준

"카페 일은 한 번도 안 해보셨고."

성은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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