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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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느닷없는 폭설이 내린 날이었다.

전공 교수님 부친상에 가느라 강원도에 갔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희문은 수련과 산골짜기 마을에 영락없이 고립되고 말았다. 어린 학생 둘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동네 주민이 마침 방을 한 칸 내줘서, 그들은 나란히 아랫목에 앉아 몸을 녹이는 중이었다.

희문(과거)

“수련아, 많이 춥니?”

그럼에도 아직 추운지, 오들오들 어깨를 떠는 수련을 보며 희문이 물었다. 무릎을 감싸 웅크리고 앉은 수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련(과거)

“응, 조금.”

희문(과거)

“조금만 기다려. 아주머니께서 불 더 넣어주신다고 했으니까 이제 괜찮아질 거야.”

수련(과거)

“…….”

수련은 그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빤히 희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말간 눈빛에 괜히 귀 끝이 붉어진 희문은 흠흠, 헛기침을 했다.

희문(과거)

“이거, 담요 좀 더 덮어. 아, 배는 안 고파? 먹을 것 좀 내가 나가서 얻어 올까?”

그는 수련의 시선을 피하며 주섬주섬 담요를 더 꺼냈다. 그리고 이미 이불을 두르고 있는 수련의 어깨 위로 꺼낸 담요를 더 둘러주었다. 그리고 멀어지려는 순간, 그녀가 희문의 팔목을 붙잡았다.

수련(과거)

“그러지 말고……선배가 나 좀 안아줘.”

희문(과거)

“……어, 응.”

수련은 고개를 숙인 채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희문은 수련이 덮고 있는 이불 속으로 들어갔고,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꽉 안아주었다. 수련이 기다렸다는 듯 그의 품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수련(과거)

“……선배 향기 좋다.”

수련의 목소리가 희문의 가슴팍에서 고동처럼 울려 퍼졌다. 사귄지 어느덧 석 달을 넘어가고 있는 두 사람이었지만, 키스 말고는 아직까지도 변변한 스킨십 한 번 제대로 못 해 본 사이였다. 그래서일까, 어두운 겨울밤 뭉근히 따뜻해지고 있는 시골 방에 단둘만 있다는 사실이 희문의 심장을 마구 쿵쾅거리게 했다.

어디 그뿐이랴. 콧속으로 스미는 수련의 향긋한 내음과 손바닥에 닿는 둥근 어깨, 마주 닿은 그의 갈비뼈와 그녀의 가녀린 몸뚱이는 희문의 음심을 있는 대로 자극하고 있었다. 때문에 의지와 다르게 그의 중심이 점점 부풀어왔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큰일이 날 것 같아, 희문은 결국 수련을 품에서 떼어 냈다.

희문(과거)

“저기, 수련아. 안 되겠다. 내가 나가서 먹을 거를 좀……!”

그 순간 수련이 희문의 양어깨를 잡고 서툴게 입을 먼저 맞춰왔다. 그녀의 두 눈은 꼭 감긴 채였고, 용기 내어 부딪힌 입술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짧은 입맞춤 끝에 수련이 고개를 떼고 희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간 눈동자가 유독 촉촉하게 젖어 빛나 보였다.

수련(과거)

“……선배, 망설이지 말아줘.”

희문(과거)

“수, 수련아…….”

수련(과거)

“……난 준비 됐어.”

그 말을 하는 수련의 볼이 복숭아처럼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희문도 더 이상 그녀와의 첫날밤을 미룰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마침내 결심이 선 희문이 수련의 동그란 뒤통수를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그녀가 작게 웃는 바람에 입술이 자연스레 벌어졌고, 그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희문의 혀가 수련의 붉은 속살을 맘껏 탐했다.

언제나 그를 안달나게 만들던 그녀의 작고 말캉한 혀가 그의 치열을 훑고 지나갔다. 그러자 다급한 마음이 든 희문이 수련의 입천장과 예민한 점막을 성급하게 핥았다. 그녀가 몸을 움찔했다.

수련(과거)

“선배……천천히…….”

희문(과거)

“아, 응…….”

뭉개진 발음이었지만 그는 충분히 알아들었다. 겨우 속도를 늦춰 다시 부드럽게 그녀의 입안을 점령해 가는데 희문은 멈칫하고 말았다. 수련이 커다란 그의 손을 끌어와 제 가슴 위를 덮었기 때문이었다.

수련(과거)

“여기도- 만져줘…….”

그녀의 말을 들은 희문은 입술을 떼고 수련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의 손을 제 가슴에 댄 채 눈을 감고 있던 그녀가 나른하게 눈을 떴다. 그의 손바닥에서 두근두근 뛰고 있는 작은 심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희문(과거)

“……진심이야?”

수련(과거)

“응. 오늘, 나 선배한테 안길 거야.”

아. 그를 보며 수줍게 웃는 수련의 모습은 제 이름처럼 한 떨기 꽃송이 같았다. 그러자 희문은 참을 수 없었다. 그는 곧장 불을 껐다. 그리고 그녀를 깔린 요 위로 조심스레 눕혔다. 밖에는 한가득 쌓인 눈이 방 안으로 반사되어 미세한 빛을 비춰주고 있었다. 그것에 눈이 익자 서로의 얼굴이 제법 잘 보였다.

희문은 소중한 것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수련의 얼굴선을 따라 천천히 쓰다듬었다. 사방은 고요했고 세상에 둘만 남겨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희문은 수련을 향한 짙은 열망을 담아, 진심을 고백했다.

희문(과거)

“사랑해, 수련아.”

수련(과거)

“……나도 사랑해, 선배.”

희문은 수련의 대답을 듣자마자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의 손이 그녀가 입고 있던 남방의 단추를 하나둘 풀어갔다. 수련은 몸을 들어 그가 제 옷을 벗기는 것을 도왔다. 희문도 빠르게 입고 있던 옷들을 하나둘 벗었다. 마침내 둘 다 속옷 차림이 되고, 희문은 제 앞에 드러난 눈부신 여체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희문(과거)

“너무……예쁘다.”

수련(과거)

“정말? 나 예뻐?”

희문(과거)

“응. 예뻐 죽겠어.”

수련은 부끄럽다는 듯 팔과 손으로 가슴과 아래를 가렸지만 희문이 금세 이를 저지했다. 그가 제 손바닥에 겨우 들어차는 그녀의 가슴을 살며시 움켜쥐자 수련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련(과거)

“떨려…….”

희문(과거)

“나도 떨린다.”

희문은 긴장을 감추기 위해 애써 웃으며 그녀의 소담한 젖가슴으로 입술을 내렸다. 진분홍빛의 유륜과 도톰히 솟은 유두가 그의 혀끝에서 맴돌았다. 낯선 쾌감에 수련의 몸이 경직되었지만, 이를 안 희문이 그녀의 몸 전체를 주무르고 문지르며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노력했다.

수련(과거)

“아아……선배…….”

희문(과거)

“하, 수련아…….”

서로의 신음이 탄성과 뒤섞이고, 방 안의 공기는 금세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희문이 그녀의 젖가슴을 희롱하며 한 손을 서서히 아래로 내렸다. 그의 손이 팬티 속을 파고들자 수련이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수련(과거)

“아앗, 선배- 거기는…….”

희문(과거)

“괜찮아, 괜찮아. 나를 믿어.”

희문은 그녀의 귓가로 입술을 올려 작게 속삭이며 귓불과 귓바퀴를 잘근잘근 깨물었다. 수련이 간지럽다며 어깨를 움츠렸다. 희문도 덩달아 키득거리며 그녀의 목덜미와 쇄골에 쉼 없이 입맞춤했다. 그러자 수련이 어느새 붙잡고 있던 그의 손목을 슬며시 풀어주었다. 덕분에 희문의 손은 둔덕을 지나 그녀의 은밀한 곳에 다다랐다.

희문(과거)

“너무 예쁘다, 우리 수련이…….”

그의 혀가 다시 수련의 젖무덤에서 멈췄다. 분홍빛 돌기는 단단해져 꼿꼿이 몸을 세웠다. 희문은 그 작은 열매에 매달리듯 깊이 탐닉했다. 아무리 물고 빨아도 질리지 않는 수련의 젖꼭지와 입술을 번갈아 지분거리며 희문은 연신 감탄했다. 아닌 게 아니라 수련은 정말로 그의 눈에 어느 한 곳도 예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수련은 칭찬에 부끄럽다는 듯 으응, 하는 신음을 흘렸다.

그의 굵고 긴 손가락이 수련의 은밀한 꽃잎 사이를 헤치고 더욱 안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그 생경한 감촉에 그녀가 흠칫 몸을 떨었다. 이보다 더 뜨거운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깊고 아찔한 샘에서 희문의 손가락을 빨아들였다.

수련(과거)

“아아, 으음……!”

수련은 못 참겠다는 듯 희문의 얼굴을 잡아당겼다. 둘의 혀가 어느 때보다 격정적으로 얽혀들면서 서로를 갈구했다.

희문은 그녀의 향기를 흠뻑 들이마시며 혹시 이게 꿈이 아닐까 몇 번이나 생각했다. 그토록 오매불망 기다렸던 수련과의 첫날밤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

후드득, 빗방울이 창문을 후려치는 소리에 희문은 움찔하며 잠에서 깼다. 그의 눈가가 촉촉했다. 아주 오래전 일을 모처럼 꿈으로 꿨다 싶었더니, 어김없이 눈물이 났나 보았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그는 눈가를 훔치며 물기를 닦았다.

희문

“……후.”

문득 팬티 앞섶이 축축한 기분이 들어 그는 바지 속으로 손을 넣어 만졌다. 이내 그는 아연하고 말았다. 아주 어린 시절 사춘기 이후로 그런 적 없더니, 수련의 꿈을 꾸면서 몽정을 했던 것이다.

희문은 지천명이 넘은 나이에 자다가 우는 걸로 모자라 몽정까지 했단 사실이 어딘지 창피했다. 그는 왠지 멋쩍은 기분으로 침대에서 내려와 욕실로 향했다. 여전히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대지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빨래 후 새로 옷을 갈아입은 희문은 주방으로 갔다. 찬물을 싫어하는 그가 정수기에서 따뜻한 물을 컵에 받아 호록, 소리 내어 마셨다. 잠에서 깬 뒤로 내리 어수선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정갈해지는 것 같았다.

컵을 식탁 위에 올려 두고 그는 의자에 앉았다. 한번 깬 잠이 쉽사리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고개를 들자 바로 보이는 베란다 너머로 어두운 밤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 때문에 가로등 불빛이 부옇게 번져 보였다. 희문은 엄지로 머그잔의 표면을 느리게 문질렀다. 따뜻한 기운이 그의 손가락을 따라왔다.

희문

“……잘 지내겠지.”

그는 무심코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방금전까지 그를 꿈에서도 눈물짓게 했던 이에 대한 얘기였다. 이수련. 그의 첫사랑이자 오랜 상처이기도 한 여자였다. 희문은 그녀 때문에 여태껏 혼자라고 할 수 있었다. 이십대에 만나 불같이 사랑했던 수련과 헤어진 이후로 그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다.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만큼이나 희문에게 깊은 상처와 애증을 남긴 여자였다. 그래서일까. 희문이 그녀를 잊고 일상을 지낼 때면 아주 어쩌다 가끔 이런 식으로 꿈에 나타나 옛날 일을 떠올리게 해 그를 눈물짓게 만들곤 했다.

희문

“……잔인하기도 하지.”

희문은 씁쓸히 중얼거리고는 컵을 들고 일어났다. 내일 오전 강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일찌감치 연구실에 나가 확인할 자료가 있었다. 억지로라도 잠을 다시 청해야 했다.

희문이 침대에 올라 이불을 덮고 누운 그때였다. 드르륵, 드르륵. 진동으로 해놓은 휴대폰이 갑자기 다급하게 울어댔다.

발신자는 모르는 번호였다. 설마 이 시간에 광고 전화는 아니겠지. 뭔가 미심쩍은 마음으로 희문이 전화를 들었다.

희문

“네, 여보세요?”

경찰

- 저, 목희문 씨 휴대폰 맞습니까?

희문

“예. 제가 목희문입니다만…….”

경찰

- 여기 경찰서인데요, 윤성애 양이 지금 보호자가 필요해서요. 이리로 와주셔야 될 것 같은데요.

희문은 수화기를 떼고 화면을 한 번 쳐다보았다.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고, 그는 다시 전화기를 귀에 갖다 댔다.

희문

“누구요? 윤성애 양이요?”

경찰

- 예. 이 학생이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을 훔치다가 걸렸거든요.

희문

“아니요, 아니요.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난 그런 사람을 모릅니다.”

경찰

- 어……. 여기 학생 말로는 자기가 이수련 씨 딸이라고 말하면 선생님이 아실 거라는 데요?

희문은 그 순간, 둔기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들었다. 그 이름은 희문이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방금 전까지 그를 울리고 웃겼던, 죽어서도 절대 잊지 못할 이름. 그의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뛰기 시작했다.

희문

“거, 거기가, 어딥니까.”

희문은 곧바로 침대에서 튕기듯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

택시를 타고 연락을 받은 경찰서로 향하면서도, 희문은 자신이 지금 꿈을 꾸는 것은 아닐까 몇 번이나 생각했다. 수련의 딸이라니. 갑작스레 타인에게 듣는 이름 석 자에 놀라 충동적으로 나서긴 했지만, 희문은 영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을 무자비하게 버리고 떠난 그녀에겐 어느새 그만한 딸이 생겼던가. 그런데 왜 그 아이는 보호자를 부르라는 말에 어머니가 아닌 저를 찾은 것일까. 여전히 혼란스럽고 여러 의문들이 생기는 가운데, 어느덧 택시는 그의 목적지에 다다라 멈춰 서고 있었다.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에도 경찰서 안은 시장 한복판처럼 시끄럽고 소란스러웠다. 취객들의 객기와 고함이 난무하는 와중에, 순박하게 생긴 경찰 하나가 문가에 서 있는 희문에게 다가왔다.

경찰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희문

“저, 연락을 받고 왔습니다. 윤성애 양이라고…….”

경찰

“아, 네. 저 쪽으로 가보시겠어요?”

희문은 경찰이 손짓한 쪽으로 먼저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그의 시야로 작고 깡마른 소녀의 풀죽은 뒷모습이 들어왔다. 희문은 마른 침을 삼키며 그리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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