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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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아침, 간만에 혼자만의 달콤한 휴식 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유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갑자기 복통이 일어나서 꼼짝할 수가 없으니까 빨리 와서 자기를 병원으로 좀 데려다 달라는 것이었다. 끙끙거리며 이야기를 하고 있긴 했지만 왠지 좀 수상했다. 제 말로는 골로 가기 직전이라는 데 내가 듣기엔 목소리가 너무 생생했던 것이다.

혹시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게 아닐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 뭐 그런 생각을 하냐고 질책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다. 그런 식의 전화를 받고 뭣 모르고 달려갔다가 흉한(?) 꼴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번엔 전화를 해서 다짜고짜 깍깍거리며 비명을 질러대기에 놀라서 달려갔더니 야시시한 속옷 차림으로 소파에 드러누워서는 "응, 바퀴벌레 때문에 놀라서 그랬는데, 내가 밟아 죽였어." 이러는 거였다. 니미랄, 바퀴벌레가 더 놀랐겠다. 아무려나 그 날 그녀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쓴 걸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벌렁거릴 지경이다. 그러니 내가 그런 전화를 받으면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안 받아봐도 뻔했다. 빨리 내려오라는 독촉 전화임에 틀림없다. 아니나 다를까, 조심스럽게 수화기를 드는데 접시 깨지는 듯한 유진이의 표독스러운 목소리가 귓전을 후려쳤다.

"야, 방우혁! 너 사람이 죽어간다는 데 아직까지 거기 있으면 어떡해? 나 죽고 난 다음에 송장 치우고 싶어? 빨랑 안 내려올래?"

어떻게 죽어간다는 년 목소리가 기차 화통 소리보다 더 생생하냐? 아무래도 불안했다. 하지만 내려가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랬다간 무슨 보복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심장을 어루만지며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나는 조심스럽게 202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저만치 침대에 드러누워 있는 유진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이불을 가슴께까지 끌어올린 채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그녀의 얼굴이 더 일그러지고 있었다.

"나쁜 놈! 언제 전화를 했는데 이제 내려오냐? 나 같은 건 죽든지 말든지 너랑 상관없다 이거지? 내가 절 어떻게 키웠는데… 키잉!"

휴지를 꺼내 코를 핑 풀고 난 뒤 그녀는 휙 돌아누웠다. 젠장, 그러게 평소에 좀 착실한 모습을 보였어 봐. 제 스스로 양치기 소녀가 돼 놓고는 왜 나더러 난리야? 그래, 성격 좋은 내가 참아야지. 별 수 있겠어.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 그녀가 몸을 비틀며 투정을 부렸다. 칭얼거리는 모습이 왠지 좀 귀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이구,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정신차리자, 방우혁. 이 구미호의 술수에 말려선 안 되지.

"머리엔 별로 열이 없는 것 같은데… 정말 아픈 거 맞아?"

그러자 그녀는 다시 내 쪽으로 몸을 팩 돌리며 얼굴을 구겼다.

"야, 배가 아프다는데 머리를 만지는 돌팔이가 어딨어? 넌 배 아픈데 머리에 열 나니?"

"배가 많이 아프면 머리에 열이 나기도 해. 그래, 배 어디쯤 아픈데 그래?"

"명치끝에서 배꼽 아래쪽까지가 다 아파."

그러면서 그녀는 이불을 걷어붙였다. 순간 나는 움찔하며 몸을 뒤로 뺐다. 설마, 했는데 그녀는 오늘도 변함없이 속살이 다 드러나 보이는 네글리제에 팬티 한 장만 달랑 걸치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브래지어는 아예 입고 있지도 않았다.

"야, 넌 사람을 불렀으면 기본적인 입성은 하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 어떻게 볼 때마다 매번 이 꼴로 있냐? 사람 민망하게시리."

내가 구박을 주자 그녀는 오히려 뭐가 잘못됐냐는 식으로 반박해왔다.

"넌 집에 혼자 있으면서 정장 차림으로 있니? 아파 죽겠는데 옷 갈아입을 겨를이 어디 있어? 별로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면서 뭘 그래?"

"새삼스러운 게 아니니까 하는 소리지. 네 말대로라도 그렇지, 하다 못해 젖 가리개 정도는 하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 별로 예쁘지도 않은 가슴을 그렇게 드러내고 싶을까…"

말을 하고 보니 실언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그녀가 발끈하며 몸을 일으켰다.

"내 가슴이 뭐가 어때서 그래? 이래봬도 목욕탕 같은 데 가면 여자들이 나더러 가슴 수술했냐고 물을 정도로 잘 빠진 가슴이야. 이거 왜 이래? 너, 이만큼 예쁘게 생긴 가슴 본 적 있어? 있어? 있으면 말해 봐!"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젖가슴을 두 손으로 받쳐 올리며 내게 쑥쑥 내밀었다. 나는 차마 그것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한 채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지, 무슨 계집애가 이렇게 부끄러움이 없을까. 날 무슨 장기판에 졸로 보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야, 안 보고 뭐 해? 빨리 대답해 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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