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말고 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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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존재하지. 아, 잘 모르겠다고? 왜 그럴 때 있잖아. 정말 그때는 그 선택이 최선인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면 아…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그때로만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는 그런 바보 같은 선택 안 할 텐데… 하는 뭐 그런 후회 가득한 거. 음,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당신과 내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언제일까.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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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우월한 기럭지, 이기적인 이목구비. 그리고 모공 하나 보이지 않는 백옥같이 희고 곱디고운 피부. 불과 33세의 나이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발돋움한 윤재인. 그가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방금 막 공항 한가운데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전 ‘유혹’이라는 영화로 크게 흥행한 재인은 베를린 영화제에까지 초대를 받아 이억만 리 먼 곳에서의 일정을 마친 뒤 오늘 돌아왔다.

기자3

“윤재인 씨! 여기 좀 한 번 봐주세요.”

기자1

“윤재인 씨! SBC에서 나왔습니다.”

기자2

“윤재인 씨! TV 연예에서 나왔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까 싶어 재인의 귀국은 극비리에 부쳐졌지만, 먹잇감이 숨는다고 포식자들이 먹잇감을 놓칠 리가. 취재진은 그의 귀국시간에 맞추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런 슈퍼스타가 등장하자 취재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서로 앞다투어 재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호태

“…아.”

재인을 경호하는 사람들과 매니저가 그가 빠져나갈 길을 만들려 노력했지만 서로 똘똘 뭉쳐 인간 바리케이드를 지은 기자들과 취재진을 뚫기엔 역부족이었다. 그의 매니저와 경호원들은 결국 백기를 들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것을 본 재인 또한 숨을 한번 깊게 내쉬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호태

“여러분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윤재인 씨는 바쁜 공식 일정을 소화한 탓에 제대로 된 수면도 취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인터뷰는 나중에 하는 거로….”

기자2

“그러니까 오래 말고 잠깐만 시간 내주세요.”

기자1

“맞아요! 나중에 언제 해요.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에서 제일 바쁜 게 윤재인 씬데.”

기자3

“그래요. 그래! 더도 덜도 말고 딱 5분만 인터뷰합시다.”

재인의 매니저인 호태가 재인을 찾는 사람들로부터 그를 지키기 위해 나섰지만, 사람들은 곧바로 호태의 말을 끊으며 그저 막무가내로 덤벼들었다.

호태

“아, 이러시면 안 된다니까요.”

기자1

“아! 글쎄 잠깐이면 된다니까요.”

결국, 지나가려는 자와 가로막으려는 자의 몸싸움이 다시 시작됐다. 재인은 호태와 경호원들. 그리고 자신을 가로막는 취재진의 때아닌 줄다리기를 보며 아찔한 듯 눈을 감았다. 그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자신의 이마를 중지로 몇 번 두드렸다. 그러다 재인은 무슨 묘안이라도 떠올랐는지 눈을 뜨고는 몇 걸음 걸어 선봉에서 고된 몸싸움을 하고 있는 호태의 어깨를 두드렸다.

재인

“호태야.”

호태

“…….”

재인

“…호태야.”

하지만 이미 자신만의 성전을 치르고 있는 전사에게 재인의 말이 들릴 리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재인은 다시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렇게 그는 삐죽 입을 잠시 내밀었다가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난 사람처럼 고개를 가볍게 두어 번 끄덕이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짝짝짝.

재인

“자, 여기 주목!”

큰 박수 소리 세 번. 그 뒤 또렷하며 큰 중저음의 목소리로 재인이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그의 큰 부름에 서로를 밀치며 싸움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무슨 마법이라도 걸린 사람들처럼 모두 일제히 행동을 멈추었다.

재인

“네, 아주 좋습니다! 그렇게 다들 잠시만 주목해주세요.”

자신에게 시선이 모인 것을 알아챈 재인이 보조개를 들어내 미소로 화답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대처가 마음에 안 드는지 그의 매니저인 호태가 미간에 힘을 주며 그의 곁으로 쫄래쫄래 뛰어와 속삭였다.

호태

“…형! 이 사람들 인터뷰 받아주면 끝도 없어요.”

재인

“그럼 이 줄다리기 같은 싸움엔 끝이 있냐?”

재인이 자본주의적인 미소를 잠시 거두고 자신에게 속삭이는 호태에게 물었다.

호태

“…….”

곧바로 호태는 재인의 짜증 가득한 목소리에 빠르게 미간의 힘을 풀고 아래로 눈을 내리깐 뒤 꿀 먹은 벙어리로 변했다.

재인

“네가 하는 게 그렇지.”

재인은 호태를 밀치듯 지나갔다. 그리고 언제 그런 짜증스러운 표정을 보였냐는 듯 곧바로 미소 가득한 표정으로 다시 취재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재인

“참 감사하게도 많은 분이 와주셨는데요. 제 매니저가 말한 것처럼 제가 제대로 잠을 자 본 적이 근래 언제인지 싶을 정도로 바빴습니다. 그래서 긴 인터뷰는 못 할 것 같고…. 아까 계속 말씀하시는 거 들어보니까 어느 분이 계속 5분만. 더도 덜도 말고 딱 5분만 인터뷰하자 그러시던데 그럼 5분만. 딱 5분만 제가 시간 내어 드려도 괜찮을까요?”

재인의 말이 끝나고 몇 초간 침묵이 흘렀다.

기자2

“이야! 역시 재인 씨야. 대화가 통해 대화가. 그럼 재인 씨 말대로 우리 딱 5분만 인터뷰하고 길 잽싸게 비켜줍시다.”

기자1

“그래, 좋아요, 좋아. 어차피 재인 씨 상대로 질문할 거 다들 비슷하잖아요?”

그때 한 기자가 감탄과 함께 큰 목소리로 동의의 뜻을 표했고 곧 옆에 있던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모두 재인의 제안이 나쁘지 않은 듯한 눈치였다. 그렇게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됐다.

재인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딱 5분 여러분이 궁금하신 점을 성실히 답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자1

“SBC 신아영 기자입니다. 질문하겠습니다.”

재인

“네.”

기자1

“최근 ‘유혹’이라는 작품이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 영화제에까지 초청을 받으시고 이렇게 다녀오셨는데요. 그곳에서도 큰 호평을 받은 것으로 압니다. 그 소감이 궁금한데요?”

작은 체구의 여기자가 긴 질문을 마친 뒤 재인의 높은 키에 맞도록 자신의 손에 있는 마이크를 힘껏 들어 올렸다.

재인

“만족스러운 기분입니다. 하지만 그런 만족스러운 기분은 제가 연기를 잘해서 느꼈던 것이 아니라 저라는 한 사람이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이런 상을 받았다는 것에서 적지만 제 조국인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드높일 수 있게 된 계기가 것 같아 그렇게 만족스러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기자들

“오~.”

그의 교과서적인 답변에 사람들은 감탄도 모자라 박수갈채를 쏟아냈다. 그리고 잠시간 멈췄던 플래시 세례가 다시금 그를 향해 마구 터져 나왔다. 그러다 몇 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야 번쩍이는 플래시 세례가 잠잠해졌다. 곧 짙은 눈썹이 눈에 띄는 어느 남성이 기회를 놓칠세라 재인에게 마이크를 가까이하며 입을 열었다.

기자2

“TV 연예입니다. 영화 말고 재인 씨에 관련된 질문인데요. 최근 같은 소속사 배우인 마유라 씨와의 열애설이 또다시 한 번 붉어졌습니다. 이것과 관련된 윤재인 씨의 생각을 듣고 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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