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1호 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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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업무를 마치고 서둘러 퇴근한 예린은 곧장 약혼자의 집으로 향했다.

늘 바쁜 업무에 시달리던 그가 오늘은 웬일인지 회사에서 일찍 퇴근하여 예린을 기다리고 있었다.

딩동―

그녀가 초인종을 누르자 수혁이 현관문을 열었다.

예린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회사에서 일찍 퇴근한 거야? 설마 내가 보고 싶어 조퇴한 건 아니지?”

현관 안으로 들어서기 바쁘게 예린은 수혁의 품속에 안겼다.

수혁

“당연히 네가 보고 싶어서 일찍 퇴근했지.”

그녀의 도톰한 입술을 단숨에 삼키며 수혁은 그대로 자신의 방을 향했다.

예린

“아직 해가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너무 이른 거 아니야?”

수혁

“오늘 아침부터 계속 널 안고 싶었단 말이야.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집에서 독립하여 직장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28평의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고 있었다.

일 년 전 약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가끔 이렇게 그의 집에서 달콤한 시간을 즐기곤 하였다.

수혁의 말에 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그의 머리를 두 팔로 감싸 안았다.

예린

“우리가 결혼식을 올리려면 아직 한 달이나 더 남았잖아? 왜 이렇게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는지 모르겠어.”

수혁

“그냥 확 동거해버릴까? 어차피 이 집에서 신혼살림을 차릴 텐데 한 달 일찍 함께 산다고 해서 전혀 흠이 될 건 없잖아?”

예린

“양가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으실걸? 더군다나 수혁 씨 부모님은 교육자 집안이신데 혼전 동거를 허락하시겠어?”

수혁의 부모는 서울의 유명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수혁

“예린아, 출산 후에도 이 몸매 그대로 유지해야 해? 알았지?”

수혁

“예린아, 사랑해.”

예린

“나도 수혁 씨 사랑해.”

수혁

“먼저 샤워할게.”

수혁이 욕실로 들어가 버리자 목이 말랐던 그녀는 주방으로 향했다.

차가운 물 한 잔을 마시고 나자 예린은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기분이 매우 상쾌했다.

그녀의 약혼자 최수혁은 일류대 출신의 변호사였다.

그녀와는 같은 대학 캠퍼스 커플이었다. 올해 28살의 그들은 9월로 접어드는 초가을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연인 사이었다.

예린이 수혁과 첫 관계를 가진 건 그가 입대를 앞둔 하루 전날이었다.

많은 친구들과 송별회를 가졌던 그는 마지막으로 예린과 새벽까지 함께 밤을 보내었고, 그날 밤 두 사람은 호텔에서 황홀한 첫날 밤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 이후 수혁이 휴가를 나올 때면 두 사람은 어김없이 호텔로 향했고, 서로를 그리워했던 만큼의 뜨거운 밤을 보냈었다.

*

잠자리에서 일어난 예린이 거실로 나오자 그녀 부모님은 벌써 공항 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결혼기념일에 맞추어서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도 여행을 가는 것이었다.

노영숙

“예린아, 식탁에 토스트 해놓았으니까 꼭 챙겨 먹고 출근해.”

남편의 복장을 점검해주던 노영숙 여사가 방에서 나오는 예린을 보자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예린

“벌써 공항 가려고?”

노영숙

“아침엔 출근하는 차량들 때문에 길이 많이 밀릴 수 있어. 더군다나 지금 비까지 오잖니? 그래서 여유 있게 출발하려고.”

이정식

“너희 엄마 급한 성격을 누가 말리겠냐?”

복장을 점검해주는 아내 앞에서 차렷 자세로 서 있던 이정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노영숙

“비행기 시간에 늦는 것보단 낫잖아요?”

노영숙 여사가 남편을 향해 살짝 눈을 흘겼다.

예린

“아빠, 엄마 이건 예쁜 딸이 드리는 여행 경비. 얼마 되진 않지만 즐겁게 노시다 오세요.”

재빨리 방안에서 가지고 나온 봉투를 예린이 노영숙 여사 손에 쥐여주었다.

노영숙

“이왕이면 넉넉히 넣어주지 그랬니?”

딸이 챙겨 주는 용돈을 흐뭇한 눈길로 내려다보며 노영숙 여사가 금액을 확인했다.

노영숙

“어머! 50만 원씩이나 넣었네?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예린

“이번 달에 보너스 받았잖아.”

노영숙

“그래. 고맙다. 우리 딸 덕분에 지갑이 두둑해졌구나!”

예린의 배웅을 받으며 남편과 현관을 나서려던 노영숙 여사가 불안한 듯 그녀를 돌아보았다.

노영숙

“예린아, 저녁에 지영이 불러서 같이 잘 거지?”

예린

“응. 오늘 저녁 우리 집에서 지영이하고 파자마파티 하기로 했어.”

노영숙

“그래. 잘했다.”

그제야 안심한 얼굴로 노영숙 여사가 현관을 나섰다.

이정식

“예린아, 문단속 단단히 하고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해야 한다.”

현관문을 닫으려던 이정식이 예린에게 또 한 번 문단속을 강조했다.

예린

“알았어. 내가 한두 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닌데…….”

드디어 부모님이 공항으로 출발하자 예린은 바삐 출근준비를 서둘렀다.

*

예린은 저녁에 지영과 함께 파자마파티 할 생각을 하자 기분이 한껏 들떠 있었다.

예린

“지영이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술하고 안줏거리 좀 사야겠다.”

핸드백을 챙겨 든 그녀가 교무실을 나서자 지영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영

“예린아, 미안한데 아무래도 오늘 너희 집에 못 갈 것 같아.”

전화기 너머 거의 다 죽어가는 지영의 목소리에 예린은 화들짝 놀랐다.

예린

“지영아, 혹시 어디 아픈 거야? 왜 이렇게 힘이 하나도 없어?”

지영

“어제저녁부터 갑작스레 몸이 으슬으슬 추워지기 시작하더니 오늘 아침엔 열이 39도나 되었어.”

예린

“어머! 정말? 어떡해? 병원엔 가봤어?”

지영

“응. 점심시간에 병원 가서 처방 약 받아 왔어. 몸살이라고 하니까 그리 걱정할 필요까진 없어. 오늘 하루 푹 자고 나면 금방 괜찮아질 거야.”

지영은 그녀와 대화하는 도중에도 심한 기침 소리를 내었다.

예린

“지영아, 아무래도 오늘은 내가 너희 집에서 자야겠다. 내가 밤을 꼴딱 새워서라도 네 병간호 해줄게.”

지영

“아니야. 예린아. 난 진짜 괜찮아. 그냥 오늘은 조용히 푹 쉬고 싶어. 미안해.”

예린

“알았어. 하는 수 없지. 그럼, 약 잘 챙겨 먹고, 집에서 푹 쉬도록 해.”

지영

“정말 미안해. 예린아.”

지영은 거듭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한 후 전화를 끊었다.

예린

“후유! 이렇게 부슬부슬 비 오는 날에 덩그러니 혼자 집에 있어야 한다니……. 수혁 씨는 하필 이럴 때 출장을 갈 게 뭐람.”

지영과의 약속이 무산되어 버리자 잔뜩 실망해버린 예린은 애꿎은 수혁을 탓했다.

집으로 돌아온 예린은 샤워한 후 간단히 라면 하나로 저녁 끼니를 때웠다.

예린

“라면은 다이어트의 적인데…….”

국물까지 남김없이 먹어버린 그녀는 배가 불러오자 그제야 자신이 다이어트 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후회했다.

새벽부터 내린 빗줄기는 오후에 접어들면서 더욱 거세어졌다.

일기예보에서는 내일 아침쯤에나 멈출 거라고 했다.

밤이 깊어지자 빗줄기는 더욱 기세등등해졌고, 천둥 번개까지 내리치고 있었다.

예린

“날씨 한번 끝내주네?”

오늘따라 수혁은 전화 한 통 없었다.

예린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웬일인지 신호음만 울릴 뿐 받지 않았다.

예린

“뭐야? 벌써 자고 있는 건가?”

할 일 없이 TV 리모컨만 이리저리 돌리던 그녀는 피곤이 몰려오자 거실 전등을 끄고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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