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대는 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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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이래 최대의 섹스 스캔들로 기록될 ‘미셸 최 몸 로비’ 사건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다. 처음엔 그저 한 건설업자의 성 접대 의혹으로부터 불거진 사건이었지만 수사가 진행될수록 복마전 같은 거대한 몸통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 정점에 미셀 최라는 희대의 로비스트가 서 있었다.
뉴스와 신문 지상엔 연일 정·제계와 문화계를 아우르는 유력인사들의 이름이 거론되었고, 그 범위는 점점 늘어났다. 당사자들은 미셀 최와의 관계를 부정하며 발뺌했지만 그들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십 년 동안 양치기 소년에 대한 학습 효과를 경험한 대중에게 그들의 반박과 반론은 외려 공허하게 들릴 뿐이었다.
대중의 관심은 미셀 최라는 여자에게 쏠려 있었다. 대체 어떤 여자이기에 그런 거물들을 한 손에 쥐락펴락할 수 있었을까, 하는 호기심이었다. 의혹과 의구심은 곧 네티즌들의 근거 없는 신상 털기를 통해 온갖 억측과 루머를 양산했다.
미셀 최의 지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그녀의 과거사를 조목조목 거론했고, 그에 대한 댓글이 개미떼처럼 뒤따랐다. 하릴없이 성녀와 요부 사이를 오가는 사이 그녀는 재재난도질 당했고, 한국의 마타하리라는 명예롭지 못한 별명까지 얻은 채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하지만 그토록 무수한 호사가들의 표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녀의 실체를 명확히 아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그녀는 끝끝내 베일에 가려진 채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당장 대한민국에 핵폭탄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요란스레 터져 나왔던 그녀의 섹스 스캔들이 그렇게 흐지부지 마무리된 데는 윗선으로부터 모종의 압력이 있었을 거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었다.
대통령이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청와대까지 접수하고도 남았을 거라는 얘기를 들은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지만 그 시작은 의외로 소박했다.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지 중 하나인 경북 봉화에서도 북쪽으로 한참을 더 가야 하는 어느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비는 외지인이었다. 그는 어느 날 불쑥 마을에 나타나 버려진 폐가에 터를 잡았다.
그는 마을 사람들의 허드렛일을 도와주며 먹을 것을 구했다. 처음엔 경계하던 사람들도 그의 성실함과 우직함에 곧 마음을 열었고 그를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다리 한쪽을 절었던 탓에 사람들은 그를 절름발이 최 씨라고 불렀다.
그는 마을의 온갖 대소사와 궂은일을 도맡아 해결하며 사람들의 신임을 얻었다. 그러한 태생적 부지런함으로 그는 몇 해 지나지 않아 작으나마 자신의 땅까지 마련할 수 있었다. 어느 틈엔가 그는 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치명적인 단점이 한 가지 있었다. 평상시엔 무골호인이라는 얘기까지 들을 만큼 순한 사람이 술만 취하면 들소처럼 광포해지는 것이었다. 몇 번의 분란 끝에 마을 어른들에게 불려가 호되게 질책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저 그때뿐, 그의 주사는 쉬 고쳐지지 않았다.
급기야 마을 사람들은 그가 술에 취한 모습을 보면 아예 대문을 걸어 담근 채 바깥출입을 삼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다시 정신이 들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순박한 얼굴로 나타나는 탓에 차마 그를 영 내치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마을엔 그처럼 힘 좋고 젊은 남자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가 마을에 정착한 지 만 4년째 되던 해였다. 그 날도 그는 저녁 반주로 곁들인 막걸리를 혼자서 세 되나 마시고는 불콰해진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요의를 느낀 그가 풀 섶에다 시원하게 오줌을 갈기는데 어디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초여름이었고 유난히 달빛이 밝은 보름이었다. 인적조차 없는 외길에서 당황스러울 법도 했지만 그는 강단 있게 소리 나는 쪽으로 어깆어깆 걸음을 옮겼다. 운 좋게 자발없는 까투리라도 한 마리 얻어 걸리려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그가 풀숲에서 발견한 것은 까투리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것도 젊은 여자였다. 여자는 궁벽한 산골 마을에는 어울리지 않는 양장 차림이었다.
여자는 허연 궁둥이를 까 보인 채 오줌을 누고 있었다. 그는 술이 확 깨는 느낌이었다. 이어 인기척을 느낀 여자가 고개를 돌렸고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정황상 놀란 여자가 비명을 지르고 그 소리에 지질린 그가 주춤거리며 물러나는 게 옳았다. 하지만 여자는 놀라지도 않았고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외려 뭘 보냐는 표정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 와중에도 여자의 사타구니 밑으로는 계속 오줌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의 귀에 그 소리가 참 맑고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는 여자가 앉아 있는 풀숲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러고는 이제 막 볼일을 마친 여자를 밀어 넘어뜨린 뒤 바지춤을 끌어내렸다. 술기운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사람을 홀릴 듯이 밝았던 그 달빛 때문이었을지도 몰랐다. 아니, 바람마저 숨죽인 그 견딜 수 없는 정적 때문이었는지도.
그의 물건은 그의 정신보다 먼저 깨어 있었다. 육모방망이처럼 우람한 그의 물건은 순식간에 여자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가 막걸리 쉰 냄새를 푹푹 풍기며 미친 듯이 자신을 깔아뭉개는 동안에도 여자는 저항 한번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독려라도 하듯 그의 등을 꽉 껴안은 채 새된 신음만 토해낼 뿐이었다.
급하게 제 볼일만 치른 그는 여자를 그대로 버려둔 채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방금 자신이 겪은 일인데도 그는 그게 현실인지 술기운이 빚어낸 환상인지 도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잠깐 생시에 꿈을 꾼 게 아닌가 생각하다가 그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머리를 움켜잡으며 몸을 일으키다가 그는 화들짝 놀라 뒤로 자빠졌다. 놀랍게도 어젯밤 그 여자가 머리맡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사나 자슥이 여자를 품었으마 책임은 못 지더라도 사람을 그리 내삐리 놓고 내빼는 거는 아이지예.”
목소리엔 그를 책망하는 기운이 있었으나 그녀의 눈빛은 평온했다. 그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지만 여자의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여, 여기는 어떻게……”
“집에 그 션찮은 다리보다야 멀쩡한 내 다리가 쪼매 더 안 낫겠는교.”
“설마 내를 따라서……?”
“그라모 누를 따라 왔겠는교?”
“와?”
“참말로 몰라서 묻는교?”
“내랑…… 살라꼬?”
그녀는 대답 대신 방 한쪽에 놓여 있던 낡은 밥상을 들고 왔다.
“찬거리가 별로 없습디더. 있는 대로 대충 차ㅤㄹㅣㅆ으이 요기나 하이소.”
그렇게 그녀는 그곳에 눌러 앉았다. 막 장마가 시작되려는 때였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풀과 나무, 하늘과 구름밖에 없는 깊은 산골에 한줄기 빛이 내려앉은 것이었다. 적어도 그에겐 그랬다.
그는 그녀에 대해 아무 것도 묻지 않았고, 그녀도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함께 살기 시작한 지 열흘쯤 지났을 때 그가 넌지시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한숨처럼 입을 열었다.
“……은심이라예.”
그것으로 족했다. 하기야 이름 따위 굳이 알아야 될 필요도 없었다. 그녀의 이름을 알고 난 뒤에도 그는 여전히 어이, 저기, 하는 식으로 그녀를 불렀고, 그녀도 저기요, 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