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남녀
본문
영등포역에 부근에 자리 잡은 사창가 골목.
이름도 간판도 없이 시커먼 커튼을 죽 두른 집들은 밤이 되면 옷을 벗어젖히고, 형형색색의 네온불빛과 하늘거리는 몸짓으로 그 음탕한 욕구를 발산시킨다.
“호호호, 오빠. 쉬었다 가세요.”
웃통을 벗어젖히고 손짓하는 여자들.
“한번 만져 봐도 돼?”
분위기에 취해 지분대는 남자들.
교묘하게 비틀어대는 몸짓 아래 은밀하게 보이는 속옷을 보고는 안 넘어갈 남자는 없어 보인다. 질척거리는 남자들의 손길에 가슴을 문질러대는 여인들이 즐비한 곳.
이곳에서는 흔하디흔한 풍경 중 하나다.
한껏 달아오른 밤은 또 다른 밤을 위해 준비되고, 그렇게 쾌락과 환희의 밤이 지나가면 또 다른 밤을 위해 준비된다.
인생이 돌고 도는 물레방아 같다면 이 또한 세상이 돌고 도는 세상 속의 이치.
남정네들의 호주머니 돈을 털어가는 여인네들의 손과 허리가 바빠지는 오늘이었다.
터벅터벅.
가로등 불빛 아래 긴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걸어오는 사내가 있다.
옆구리에는 일수 가방을 꿰차고 터벅터벅한 걸음으로 사창가 초입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그의 이름은 김태풍. 하지만 이곳에서는 모두 그를 일수 오빠라고 부른다.
그는 비록 일수쟁이지만 이곳에 몸담은 대부분의 여인은 그를 좋아했다.
이 바닥에 사는 사람답지 않게 인정이 많고, 성격도 온화했다.
여인들에게는 꽤나 다정다감했다. 허나, 싸움할 때는 같은 사람일까 싶을 정도로 무섭도록 돌변한다. 어려서부터 어깨너머로 권투를 배웠는데, 싸움 실력도 꽤나 좋아 방귀 좀 뀐다 싶은 놈들도 얻어맞고 쫓겨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를 발견한 계집년 하나가 화색 어린 얼굴로 그를 불러댔다.
벌써 이곳에서 2년째 머물러 있는 지은이라는 애였다.
“일수 오빠! 잠깐 들렀다 갈래?”
“왜 이래 초장부터? 손님 없어?”
“응. 나 아직 개시도 못 했어.”
지은이 울상 어린 표정을 지었다.
태풍이 손사래를 치며 달랬다.
“내일 돈 내는 날이라서 그래? 돈은 천천히 줘도 돼. 이자 안 받을 테니까. 뱃놀이는 다음에 타자?”
“아 뭐야. 오빠! 누가 돈이 없어서 그래!? 아이, 그러지 말고 한번 들렀다가 가라. 응? 화대 안 받을게. 잠깐이면 돼. 응? 응!?”
“됐어! 사우나 갔다가 와서 힘없어. 다음번에 하자. 다음번에.”
지은이 볼멘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아, 맨날 다음이래! 누가 오빠보고 움직이래? 그냥 누워만 있으면 된다니까? 그러지 말고… 아얏!”
자꾸만 졸라대는 통에 난처했는데, 다행히 태풍을 구원해주는 손길이 나타났다. 보다 못한 언니 한 명이 지은의 머리를 쥐어박고 나섰다.
“야 이X아! 태풍이 자빠트릴 궁리하지 말고, 저기 가는 저런 샌님들이나 물어와. 하루 종일 가게 안에 처박혀 있으니 손님들이 오겠어? 오늘 장사 안 할 거야!?”
지은이 머리를 마구 문지르며 미간을 찌푸렸다.
“에이씨, 나 오늘 아저씨들 받을 기분 아닌데…. 정 급하면 언니가 나가던가!”
또다시 언니가 머리를 쥐어박았다.
“넌 기분 따라 장사하니? 썩어빠진 게 몸뚱어리라고 굴려야 돈을 벌지! 그리고 이 나이에 내가 나가리? 시끄럽고 빨리 가서 물어와. 뭐해!? 어서 가지 않고?”
“아이씨!”
지은이가 브래지어를 잔뜩 치켜 올리면서 투덜거렸다.
쳐진 가슴이 단번에 솟구쳤다. 올라간 가슴만큼이나 자신감도 올라갔다.
“에이, 더럽고 치사해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문밖으로 나가는 지은을 보며 태풍이 피식거렸다.
이제는 이러한 것들이 일상이 되어버린 생활이다.
이곳에 흘러들어 온 지도 벌써 2년째.
그동안 이곳에서 별의별 꼴을 다 보며 지내왔다.
사람들은 창녀라고 하면 더러운 벌레 보듯 색안경을 끼고 쳐다보지만, 태풍은 알고 있다. 여자로서 살 수 있는 가장 밑바닥 삶을 살고 있지만, 그녀들이야말로 가장 애환이 많고, 한 서린 여인들이라는 걸.
그리고 감정적으로는 순수한 여인들이라는 걸.
다만 모두들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지만.
“응?”
그때 태풍의 눈길을 잡아끄는 여인이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37번 집 문턱에서 꽃무늬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문밖을 보며 멀뚱거리고 있었다.
이곳에 머무는 여자들은 죄다 이름까지 알고 있는데, 단연코 오늘 처음 보는 여자였다. 나이는 21살 정도나 되어 보일까? 잔뜩 경계 서린 눈빛, 불안정한 동공. 남자들의 눈길을 은연중에 피하고 있었다.
왠지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응? 저기 저 애 누구야?”
“아, 쟤? 어제 새벽에 새로 왔어. 오늘부터 일하네?”
“누가 데리고 왔어?”
“과장님이 직접 데리고 온 거 같던데?”
“과장님이?”
“뭐, 어디선가 사채 끌어썼나 보지. 뻔한 거 아니겠어? 왜? 오빠 저런 타입 좋아해?”
“아니야. 타입은 무슨. 그리고 나 오빠 아니라니까? 내가 한 살 더 어려.”
“나이가 뭐가 중요해. 잘생긴 놈들은 다 오빠지.”
피식.
태풍이 웃었다.
맞는 말이다. 하기야 이곳에서 호칭이 뭐가 중요할까 싶다.
“아참. 나 얼마나 남았어? 일수 얼마나 더 찍어야 하지?”
“잠깐만.”
태풍이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페이지를 넘기더니 이내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11일 남았네. 거의 다 끝났네?”
“어휴. 지긋지긋해라. 이번에 일수 끝나면 다신 돈 쓰나 봐라. 내가 다시 돈을 쓰면 오빠 딸이다.”
“어이구, 제발 좀! 그런데 나보다 나이 많은 딸은 필요 없는데?”
“말이 그렇다는 거지. 누가 진짜 아빠 삼는데?”
영미가 바짝 다가와 몸을 붙였다. 브래지어도 차지 않은 가슴을 비벼대자 바짝 긴장되어 있는 딱딱한 촉감이 팔을 통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남편이라면 모를까….”
그녀가 들릴까 말까 한 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새초롬한 표정을 짓던 영미의 손은 어느새 미끄러지듯 태풍의 골반 아래를 지나 사타구니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태풍이 교묘하게 허리를 비틀며 손길을 피해갔다. 허공만 움켜쥔 그녀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아, 아까워라.”
이젠 이런 식의 장난은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내공이 쌓였다.
태풍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나 간다.”
***
태풍은 부산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서울로 상경했다.
연고지도 없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터라 묵을 곳도 없었다. 숙식제공이 가능하다는 말에 어느 단란주점 웨이터로 취직했는데, 그때 주점을 관리해주던 이가 바로 김부장이었다.
체격 좋고, 외모도 반반한 태풍은 단숨에 김부장 눈에 들었다.
아랫사람 막 굴리기로 유명한 김부장이었지만 그도 태풍만큼은 마음에 들었는지 용역일 같은 험한 일에는 동원시키지 않았다.
그런 태풍을 두고 조직 내에서는 말들이 많았다.
특히나 김부장의 오른팔 격이라 할 수 있는 두치는 대놓고 태풍을 견제했는데 자신이 맡은 영등포 구역에 태풍을 꽂아 넣은 것도 바로 그였다.
더 이상 커 나가는 것을 억제하고, 영등포 사창가에서 김부장 눈에 띄지 않게 일수나 찍으라는 의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