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를 재워줘
본문
태선은 어느 새 자신의 상의를 들춘 뒤 납작하게 붙어있는 유두를 정신없이 혀로 핥는 윤정을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 썼다.
“하, 윤정아, 제발…….”
“흐으, 가만히 있어봐, 당신.”
그러나 오늘도 윤정은 막무가내로 그를 침대에 끌어다 눕히고 바지 앞섶을 멋대로 문질렀다. 신체 건강한 남성인 태선은 그녀의 적극적인 유혹에 의지와는 달리 솔직하게 발기하고 말았다.
“아, 윤정아, 읏.”
“하아. 내가 이러는 게 정말 싫으면, 문도 열어주지 말았어야지. 누누이 말했지만 당신은 이렇게 우유부단한 게 탈이야.”
“하…….”
“그래서 내가 더 이러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윤정에게서는 진한 알콜 냄새가 났다. 오늘도 술에 취해 그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녀의 저돌적인 애무에 숨결은 점차 거칠어지고 그의 페니스는 입맛을 다시며 질질 물을 흘렸다.
“아, 제발…….”
태선의 반항은 무의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우위를 점령한 윤정은 자신이 입고 있던 재킷과 블라우스를 벗어 던진 뒤 브래지어도 풀고 있었다.
“하아, 태선 씨, 빨아줘.”
윤정은 퉁실한 자신의 젖가슴을 그의 입에 물렸다. 거절은 거절이었다. 태선이 고개를 돌리면 벌써 윤정의 손에 붙잡힌 페니스가 이리저리 아무렇게나 휘둘렸다. 그건 쾌락을 동반한 고통에 가까웠다.
“읍, 으읍…….”
“흐응, 너무 좋아……!”
마지못해 자신의 가슴을 빨기 시작하는 태선에게 윤정은 흥분했다. 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벗어던진 팬티로 휑한 아랫도리는 그의 배에 기름칠을 했다.
“하아, 하아, 윤정…… 읍.”
윤정은 태선의 입술을 갈급하게 찾아 마셨다. 태선은 머릿속이 엉망진창으로 뒤엉키는 걸 느꼈다. 그녀는 그를 배려하지 않았고, 오직 살아있는 딜도를 대하듯 태선을 자신의 성노리개처럼 부렸다.
“하앙…… 태선 씨!”
멋대로 그의 물건을 자신의 음부에 꽂아 넣으며 윤정은 즐거워했다. 원치 않는 속도에 태선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제 위에서 허리를 흔드는 여자의 리듬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본능과도 같은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결국 한 사람의 일방적인 구애로 시작한 섹스는 끝내 광란의 몸부림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침대 헤드를 붙잡은 채 엎드린 윤정의 엉덩이 사이를 자신의 남근으로 푹푹 찔러 넣으며 태선은 열락과 자괴감 사이의 그 어디쯤에서 넋을 놓고 있었다.
“하으, 아앙! 태선 씨, 더, 더!”
윤정은 소리 높여 교성을 지르며 태선을 더욱 졸랐다. 굵은 땀방울이 그의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서로를 한계까지 내몰며 그들은 절정을 향해 양보 없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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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했던 정사가 끝난 후, 개운하게 샤워까지 하고 나온 윤정은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쳤다. 그녀에게선 이제 더 이상 술기운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바지만 입은 채 침대에 걸터앉은 태선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이제 제발 그만 와. 이러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그래, 알았어.”
“김윤정. 나 농담하는 거 아니야.”
“자기도 솔직히 좋았으면서 뭘 그래? 아니, 나 아니면 자기도 많이 쌓일 거 아냐. 이럴 때 풀고 그러면 서로 상부상조 하고 좋은 거 아니야?”
붉은 립스틱을 입술에 새로 바르며 윤정이 새침하게 답했다. 그러나 태선의 얼굴은 좀처럼 풀어지지 않았다.
“쌓이건 말건 내가 알아서 할게. 넌 지금 우리 이러는 게 정상적인 거 같니?”
“비정상일 건 또 뭔데. 우리가 남이야? 한 이불 덮고 같이 산 게 얼만데. 당신 정말 서운하게 이럴래?”
윤정은 이제 피식 웃으며 태선을 놀렸다. 태선은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 쳤다.
“나랑 한 이불 덮기 싫어서 이혼하고 떠난 거 아니었어? 너 다음 달에 재혼한다며. 새로 결혼할 남자가 너 술 먹을 때마다 나한테 와서 이러는 건 아냐?”
“물론 모르지. 그래도 여보, 그냥 좋게 생각하면 안 돼? 자기 물건이 내 남편 될 그이 보다 더 크고 실하다고. 태선 씨가 그 사람보다 모든 면에서 다 후져도, 그거 하나만큼은 내세울 수 있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라구.”
“야, 김윤정!”
“그러지 말고 당신도 다음 달에 내 결혼식에 오던가. 호텔 뷔페니까 식사 한 끼 하고 가. 아, 청첩장 있어야만 들어올 수 있긴 한데. 하나 줘?”
윤정은 농담이 아니라는 듯 핸드백에서 청첩장 하나를 꺼내 식탁에 올려두었다. 태선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윤정의 행동을 노려보았다.
“옷 깔끔하게 입고 와. 알았지? 거기 중요한 사람들 많이 온다. 그럼 난 갈게.”
윤정은 끝까지 태선을 조롱하며 현관을 나섰다. 그는 식탁 위에 올라온 청첩장을 들고 전 와이프를 쫓아 나갔다.
“김윤정! 이딴 거 필요 없고 다신 오지 말라고!”
태선은 이미 낡은 아파트의 기나긴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 윤정의 뒤에 대고 격하게 청첩장을 던졌다. 고급스럽게 만들어진 그것은 꽤 무게가 있어 그녀의 등을 맞고 떨어졌다. 그 때문에 잠시 멈칫한 윤정은 하는 수 없다는 듯, 그가 던진 청첩장을 주워들었다. 그녀는 상큼하게 웃으며 태선을 향해 종이를 흔들어 보였다.
“그럼 다음에 또 봐, 여보.”
“오지 마! 제발 오지 마!”
그의 절규와 같은 외침에도 윤정은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태선은 밀려오는 절망과 자괴감으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그러다 자신이 거의 맨몸으로 밖에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빌어먹을.”
윤정은 자신의 스위치가 무엇인지 너무 잘 알았다. 어딜 어떻게 자극하면 흥분하고 괴로워하는지 같은 것들을 말이다. 태선은 급격한 피로를 느끼며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옆집 문에 기대 서 있는 여자애를 발견했다.
“……뭘 봐요.”
“……뭐?”
그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저 여자애가 내게 말한 건가? 뭘 보냐고? 그가 황당함에 벙쪄 있는 그때 여자애가 서 있는 문 뒤로 어떤 남녀의 신랄하고 거침없는 욕설과 이리 저리 뭔가가 부서지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태선은 그 애가 왜 밖에 나와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봐서 미안하다.”
그는 힘없이 사과 하고는 터덜터덜 집으로 들어갔다.
그럼에도 지금 누군가의 인생에 개입하기엔, 자신의 인생 역시 엉망진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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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과 이혼한 지 6개월이 지난 때였다. 그녀는 두 달 전부터 술을 많이 마신 날이면 불쑥 불쑥 태선을 찾아왔다. 처음부터 그를 덮쳤던 것은 아니었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둘은 어느 새 섹스 파트너 같은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한 쪽의 일방적인 행동에 의해서 말이다. 그런 그녀를 끝까지 거부하지 못하는 태선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다만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개선할 수 없었을 뿐.
연애부터 결혼과 이혼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윤정에게 끌려 다니며 살았던 남자였다. 그러니 이런 부도덕한 관계라고 해서 태선 홀로 먼저 끊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또, 윤정이가 나한테 질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가.”
태선은 뒤늦은 샤워를 하며 스스로를 자조했다. 물에 몸을 헹구고 나온 그가 새 옷을 꺼내 입는 그때.
딩동 - .
야심한 시각 누군가 그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떠난 지 얼마 안 된 윤정이 다시 돌아왔을 리는 없기에, 태선은 의심 없이 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저 잠깐만, 여기 있다 가면 안 돼요?”
밖에는 조금 전 그와 눈을 마주쳤던 소녀가 서 있었다. 예상치 못한 손님의 등장에 당황한 태선이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그것이 나미와 태선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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