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인숙에는 좋은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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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름한 여인숙, 오늘은 또 어떤 손님이 나를 기쁘게 해 줄까…?
남편이 죽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tv를 보며 맥주를 마시던 사람이 다음 날 아침 일어나지 못하고 송장으로 변했다. 사인은 급성심정지란다. 원래 심장이 약한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너무나 갑자기 죽을 줄은 생각도 못 했고, 의사도 거의 없는 일이라 한다.
입관하기 전까진 멍하니 있었다. 사람들이 와서 울고 위로의 말을 건네도 별생각 없이 괜찮다며 애써 침착하게 있었다. 으레 배우자와 사별하면 흘리는 눈물과 괴로움이 있긴 했으나 이를 믿을 수가 없어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그저 주변에서 슬피 우니까 따라 우는 정도로 그쳤다.
입관하여 남편의 차가운 손과 얼굴을 보았을 땐 기절했다. 그토록 생기 넘치고, 언제나 날 안아주던 따뜻한 모습이 아닌 생기 없는 그저 밀랍인형처럼 있었기 때문이다. 땅을 치고 울부짖고, 소리치는 것을 넘어 그의 모습을 보고 기절하여 난 남편의 화장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6개월간 죽지 못해 살았다. 매일 자살할까 고민하고 괴로움에 수없이 벽에 머리를 부딪치다 순간 기절해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남편의 주변인들은 너라도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지. 그를 위해서라도 더 행복하게 살아야지 왜 그러고 사냐고 타일렀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23살, 남편이 33살 때 우린 처음 만났다. 편모 밑에서 자라온 나와, 어릴 적 부모를 여의고 평생을 일 만하며 살아온 남편, 우리는 공통점이 많았고 서로의 아픔을 잘 보듬었다. 집안이 유복하지 못해 아주 어릴 때부터 공사판에서 일하던 남편은 이 근방에서 잘나가는 건축업자가 되었고, 달에 수많은 돈을 벌어왔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다수의 일용직과는 다르게 남편은 착실히,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나와 돈을 모아 고향에 작은 집과 부가수입을 위해 여인숙을 하나 차릴 수 있었다. 1년 연애 후, 3년간 결혼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싸운 적 없을 정도로 우린 행복했다. 근 20년 가까이 아비 없는 년이란 말을 들으며 살아온 내게 만난 남편은 나에겐 복권이요, 목숨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내 인생 모든 것을 함께하던 사람이 죽었으니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그러나 사람이 참 간사한 것이 6개월이 지나고 1년쯤 지나니 어느 정도 사별한 남편에 대한 괴로움이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했다. 남편이 남긴 여인숙을 운영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이웃들과 정을 쌓고, 자주 오는 손님들과 만나 얘기를 나누며 난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만이 떠나간 남편의 소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가끔 남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으나 일상생활을 하는 데엔 무리가 없었다.
난 평생 행복하게 살 것이다.
떠나간 그를 위해서라도.
...
마당 있는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는 골목 옆으로 ‘낙원 여인숙’이라 적힌 조그마한 간판과 허름한 입구가 보인다. 색이 반쯤 벗겨진 초록색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더럽고 오래된 분위기와는 다르게 안은 내부는 깔끔히 청소되어 있었다. 벽면에는 낡은 분위기 쇄신을 위한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었고, 음료 냉장고엔 탄산이며 이온음료가 칼같이 놓여있었으며 카운터 앞에는 쫀드기나 아폴로 같은 추억의 과자를 진열해놓고 있었다. 숙박 손님들을 위한 서비스인 듯하다.
“아 졸리다.. 저 드라마도 곧 끝나가네~”
헐렁한 흰색 긴팔 티셔츠에 짧은 돌핀 팬츠를 입고 있은 채로 카운터에서 기지개를 켜며 늘어지게 하품하는 여성이 보인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얼굴에 검은색 단발머리에 큰 눈, 작은 얼굴에 귀여운 외모, 주름 하나 없이 탱글탱글한 눈매. 헐렁한 상의를 입고 있음에도 가슴이 드러나는 것을 보면 몸매도 보통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런 그녀를 누가 미망인으로 보겠는가
박나영 29살.
위에서 언급한대로 어린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낙원 여인숙을 운영하고 있다. 그전에 살던 신혼집은 팔아 숙소 인테리어 비용과 목돈으로 조금 남겨두고 현재는 여인숙의 한 방을 조금 개조하여 여기서 지내고 있다. 주변에서는 남편과 살던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 정착하라는 말도 하지만 그녀는 남편과 함께했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기 위해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남편이 없어져 아무런 연고도 없는 조그마한 시골에 사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주변의 텃세도 있었고,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것을 안 남자들이 그녀에게 추근덕 대기도 했다. 심심하고 외로웠으나-
“박 양 있는가-”
“네! 이모님~ 무슨 일이세요, 어제 버섯 말린 거 있는데 차 끓여드릴게. 들어오세요”
여인숙 미닫이문을 열고 60은 족히 넘어 보일 여자가 들어오고, 나영이 반갑게 그녀를 맞이한다.
“아니 바로 나가봐야 혀. 곧 손님 몰릴 시간 아닌가, 다른 게 아니고 준비한 불고기가 좀 남아서 가져왔어. 바로 익혀서 먹으면 돼”
“이구 이모! 괜찮다니까요, 자꾸 이런거....”
“나 바쁘니까 바로 가네~”
이곳에서 결혼부터 5년 넘게 살다 보니 주변 사람들도 그녀를 이웃으로 인정하였고, 남편과 일찍 사별한 그녀가 안타까운지 여러모로 도움을 주곤 했다. 이렇게 반찬을 가져다주는 식당 이모, 고장 난 수도를 늘 무상으로 고쳐주는 철물점 배 사장 등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았고, SNS로 근처 바다가 유명 관광지로 선정되어 여인숙 손님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그럭저럭 적응해서 잘 살아가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나영이 받은 고기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다시 카운터로 돌아가 tv를 끄고 핸드폰을 만지기 시작한다. 별생각 없이 인터넷을 하던 그녀는 순간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침을 삼키며 아무도 없는 곳에 굳이 핸드폰을 더욱 가린 채 야한 사이트로 들어간다.
남편을 잃은 상처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어느 정도 치유할 수 있다 쳐도 29살, 한창 남자를 만나고, 신나게 즐길 꽃다운 나이에 그녀는 외로움, 특히 몸의 외로움은 견디기 힘들었다. 원래 성욕이 많았던 그녀는 몸 좋은 남편과 하루에 2번씩 했었고, 남편이 힘들어 먼저 자거나 출장을 가는 날엔 혼자 자위하며 몸을 달래곤 했다. 사별 후 거진 1년은 성욕이 싹 말라 자위는 전혀 하지 않아 왔으나, 후에 1년. 특히 요새는 밤마다 몸이 뜨거워 매일같이 보지를 비비고, 가진 자위 기구를 사용해 아랫구멍을 쑤셔왔다.
남자 맛을 못 본 지 2년이 넘어가니 자위로도 힘들었고 남자 손님이 오는 날, 특히 출장 나와 일을 하는 몸 좋은 노무자들이 웃통을 벗은 채 카운터를 왔다 갔다 하면 나영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고, 밑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오늘 그녀가 보는 야동은 여학생과 과외선생의 질펀한 섹스. 남자의 물건이 그녀의 보지에 완전히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볼 때마다 나영의 얼굴이 계속 빨개지며 당장에라도 자리를 빨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과외선생이 학생을 의자에 고정해 다리를 벌리게 시키고 그대로 자지를 찔러 넣을 때, 현주는 돌핀 팬츠 위로 슬슬 고간을 문질러댄다.
“흐으음...”
누가 보면 안 되는데, 문도 열려있어 들어오면 안 되는데. 일단 문부터 닫고 와야지. 생각해도 이미 몸은 고간을 빠르게 비벼대는 나영.
“하... 씨... 안되겠다!”
잠시 고민하다 나영은 이내 결심한 듯 방으로 들어가 가장 아끼는 딜도를 꺼낸다.